01/05/20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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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나무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리수 나무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보리수 나무는 슈베르트의 보리수와 고타마 싯다르타의 보리수를 말함입니다.
저도 무한 나무 사랑에 심취하여 발품 팔기를 멈추지 않았던 삯으로 귀한 나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인도 보리수 나무를 얻게 된 연유는 참으로 뜻밖에 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인도 보리수 나무입니다.
인도보리수 (pippala) 의 학명은 (Ficus religiosa), 영명은 ( Sacred fig, bo-tree, peepul)이며, 힌디어는 ( Pipal), 산스크리트어는 (Pippala, ashwattha)이다.
뽕나무과(Moraceae)의 상록수인 인도보리수(Ficus religiosa)는 핍팔라(pippala)나무인데 <고타마 싯타르타>가 그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보리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산스크리트어로 ‘보디 드루마(Bodhi druma)’, 또는 '보디 브리크사(Bodhi vriksa)'라 하는데 ‘브리크사’를 음역한 것이 ‘보리수’이다.
‘깨달음을 준 나무’라 해서 각수(覺樹), 도량수(道場樹)라고도 불린다.

성문 앞 우물가에서(Am Brunnen vor dem Tore)" 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가곡은 1822년에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가 쓴 시에 슈베르트(Franz Schubert)가 1827년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보리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Winterreise)』 중에서 가장 널리 애창되는 가곡입니다.
1
성문 앞 우물가에,
보리수 한 그루 서 있네;
그 보리수 그늘 아래서
나는 그리도 많은 단꿈을 꾸었지.
나는 그 보리수 가지에다
그토록 여러 번 사랑의 말을 새겼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는 언제나 그 보리수에게,
나는 언제나 그 보리수에게 갔었지
2
나는 오늘도 깊은 밤을 지나
떠돌아 다녀야만 했네,
그때 어두움 속에서도
나는 눈을 감았지.
그리고 보리수 가지들이
쏴쏴 소리를 내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나에게로 이리 오게나,
3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로 바로 불어 닥쳤네;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 버렸지만,
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네.
지금 나는 그곳으로부터
여러 시간이 걸리는 곳에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보리수의 쏴쏴 소리를 듣고 있네:
자네는 거기에서 안식을 찾을텐데,
자네는 거기에서 안식을 찾을텐데!

부처는 서른 다섯 살 되던 해의 어느 날 저녁,
부다가야(Buddha-Gaya: 오늘날 인도의 비하르 주 가야 근처)의 네란자라 강둑의 어느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그 이후부터 고타마는 부처, 즉 '깨달은 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부처의 보리수는 인도/스리랑카 원산으로 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이다. 학명은 Ficus religiosa이며, 인도보리수(印度菩提樹)가 정식 명칭이다.
추위에 비교적 강한 편이어서(4~영하 1도 사에의 기온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힌두교도들이 이 보리수를 성스러운 나무로 숭배하기도 한다.

피나무과에 속하는 중국 원산의 보리수(학명은 Tiliamiqueliana)가 있다. 이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 보리수가 바로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이다.
독일어 명칭은 린덴바움(Lindenbaum: 영어로는 linden tree)이다. 슈베르트 덕분에 이 명칭은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가 1827년, 그러니까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작곡한 가곡집 \<겨울나그네>(D 911, 작품 89)의 제5곡이 바로 '보리수'이다.
인도보리수와 서양보리수를 혼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인데, 그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오늘날 일반인들의 책임은 아니다. (슈베르트의 책임은 더욱 아니고^^.)
인도보리수는 열대성이어서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때문에 잎 모양이 비슷한 피나무과의 보리수(서양보리수)를 일종의 대용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중심한 에투 알 광장의 그 열 두 개의 도로 모양의 도시 계획의그 구도가 불교의 만다라 이미지에서 수용하였던 것이라고 지적한 '칼 융'의 통찰을들지 않더라도 근대의 독일 또한 동양문화를 크게 수용하였다.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 말고도 근대 독일 문화의 형성은 인도 문화를 받아들이면서이같은 보리수 문화를 수용하였는데 오늘날 통일 독일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부란덴브르그 문이 있는 거리 이름인 운터덴 린덴의 뜻은 '보리수 아래'라는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독일 거리에도 나오는 보리수 의미는 고대 인도의 보리수 문화와 그대로관련이 있는 것이다
.
고대 역사가 현대의 예술적 작품으로 연계된 예를 여기에서도 볼 수가 있다.
18세기이래 20세기까지 독일 문화에서는 하켄크로이츠(卍) 등의 문양이나
동양의 불교적인 이미지를 많이 수용한 것인데 그 중에도 보리수 의식은 삼백년 전에 독일의 흑림문화의 수목신앙이 기독교에 습합되어 크리스마스-트리로 받아들여진또 다른 과정의 불교적 연결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슈베르트는 병마에 시달리며 끼니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겨울나그네>를작곡했다고 한다.
'보리수 그늘 밑에서 단꿈을 꾸었던 나그네가 자신에게 안식을 주는 보리수에게애정을 느끼지만 불현듯 불어 온 차가운 바람이 모자를 날려 버리고 결국 나그네는보리수 곁을 떠난다'는 내용의 가사에서,
젊은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감수하며(31세에 사망) 예술혼을 불태웠던작곡가의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한 몸으로 이겨내야 했던 고타마의 보리수와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비록 시간적, 생물학적으로는 달라도무언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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