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8/20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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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 엔드류스가 주연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 관객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 영화는 내게 다가왔다. 우리들 포르테의 날과 어쩐지 닮은.
1970년 여름 수락산이 가까운 황토마당이 있는 작은 집에 살게 되었다.
야트막한 언 덕 위에 댕기 많이 지어진 집에는 두 가족이 살았었는데, 각기 드나드는 부엌문이 달라서 그 집과는 별 왕래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집 역시 나이 든 언니 휘하에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었고 어찌어찌하여 우리도 내 휘하에 두 남동생과 지금은 대단한 광고 회사 안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여동생 이렇게 꼬마들 넷.
살았다기보다는 장난치며 잠자고 일어나면 먹고 우화처럼.
옆집 나이든 언니들은 날마다 무얼 그리 맛나게 만들어먹는지 위장을 자극하는 냄새가 끊이질 않았고 음식을 만들 줄 모르던 우리는 코로는 그 집에서 풍겨 나오는 맛난 냄새를 맡으며 입으로는 국적 없는 음식을 먹었다. 오전 내내 그 집 언니들은 잠만 잤고 우리들은 장난꾸러기 참새 떼처럼 마당에서 떠들며 돌아다니다가 조용히 놀라는 핀잔을 받았다. 남동생은 주먹을 불끈 쥐며 저것들을 그냥 한 방 먹여 버릴까? 누나?라고 부라렸지만 막상 그 집 나이 든 누나가 부엌문에 모습을 드러내면 찔끔하여 마당 아래로 달아나곤 했었다.
집으로 오르는 언덕이 어린 눈에도 을씨년스러워 보였던지 우리는 세숫대야로 언덕 저 아래 검츠레해 보이는 흙을 날아와 길 양쪽에 꽃밭을 만들었었다. 남동생은 어디선지 벽돌을 구해와 틀을 만든 다음 어디든 지천으로 피어있던 코스모스와 봉숭아 채송화 따위 모종을 심었는데 그들에게 쏟아부었던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꽃밭을 가꾸는 재미로 한 여름을 지냈다.
무더운 날 오후.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 옆 집 작은 언니가 꽃밭을 들여다보며 그새 많이 자랐구나 가을에는 봉숭아 꽃물을 들이자 내가 백반을 사 가지고 올 테니 너희들이 잘 키워라 알았지? 소나기가 오면 꽃들이 다 떨어지니 떨어진 꽃도 주워 모아 놓고...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언니는 봉숭아 꽃물이 든 손톱보다 더 붉고 갸름하게 이뻤다.
해가 질 무렵이면 화장을 곱게 하고 검정 뾰족구두를 신고 늘 외출을 하는 그 작은 언니는 돈을 많이 벌어왔다. 향기로운 음식 냄새로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주인은 바로 그 작은 언니였던 것이다. 휘하에 거느리는 식솔이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만만치 않아 나는 내 능력이 부족하단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기 시작했고 작은 언니가 밖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가고 없는 한 낮이면 그 집 부엌문 사이를 빠끔 들여다보며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여자들이 우리에게 비례하여 더 많은 편이라, 그것도 다 큰 여자들이었으므로 레이스가 보들보들해 보이던 속옷들이 부엌 빨랫줄에 참 예쁘게도 걸려 있었다. 기막히게 예쁜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고 그 옷들 대부분은 버스를 탈적에는 입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대체 작은 언니는 저런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어떻게 종로니.. 광교니.. 하는 데까지 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작은 언니는 손톱에 바른 그 색처럼 붉은 입술연지를 바르고 다녔다.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옷들을 바라보며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상상도 닿아지는 끈이 있어야 가능했다.
너 뭘 들여다보니
나이 든 큰언니가 뒤에서 등을 탁 치며 돌려세웠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적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한 참이나 생각해도 별 신통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럴 땐 사실대로 말해야 도둑으로 몰리지 않겠다는 현명한 답이 머리를 번득 스치고 지나갔다.
언니.. 작은 언니가 뭘 하시는지 저도 좀 가르쳐 줘요.
왜?
나도 내 동생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싶고, 날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싶어요.
넌 안 돼
왜요?
글쎄 넌 안 된다니까 넌 아직 어려서 안 돼... 쪼끄만 게 공부나 할 것이지.. 너 술 먹을 수 있어?
그랬다. 작은 언니는 날마다 술을 마시러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날마다 술을 마시러 다니는 작은 언니는 언제나 책을 들고 다녔다. 책을 들고 술을 마시러 나가는 작은 언니와 내 영혼이 스러질 때까지 잊지 못할 대단히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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