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20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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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히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 때가 있다.
참 어설픈 일이지만 이따금 황당한 주문이 오른쪽 가슴 언저리던가 왼쪽 가슴 언저리던가 뜨끔하니 불화살 처럼 돋아난다. 독백으로 쓰여지는 글 첫 머리에서 멈칫하니 떠오르기도 하고 교차로 가로등 아래서 그러했다.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회전하면 산계리. 산천어들이 작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커다란 바위사이를 유유하는 모습이 떠올라 내가 청정해짐이 느껴지는 곳이며, 조금 아래로 내려가 돌아가면 낮은 계곡 풀섶에서 셀수 없이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반겨주는 청둥 오리들이 있다.
특히나 어제 처럼 바다 안개가 낮게 깔린 차분한 날에는 정말 소리내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형체가 떠오르긴 하지만 불러지지 않는 이름을 대신하여 적절하게 쓰여지는 호칭이 '그대' 이다.

불빚이 고요하고 안개 바다가 가까이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청둥 오리들이 쉬지 않고 헤엄치는 여기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라는 독백을 읖조리고 나면 잘 어울리는 호칭인 '그대' 가 소리없이 뒤 따른다.
딱히 누구를 부르는 것도 아니지만 부르고 싶다는 열망이 껍질을 벗고 나온다.
생각해본다. 형체도 없는 이름이 불러보고 싶음의 정체는 무었인가.
허허로움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 그럴 수 없음의 표출이라고 단정짓고 싶어진다.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을 가리고 그대라는 허울로 부를 이름이 공중에 흩어진다. 이것은 조락의 꼭지점에서 붙잡고 싶어지는 허상이라고 정의한다.
누가 나를 내가 누구를 ..그대가 나를 내가 그대를 부르고 싶음의 이 모든 것은 허상이다. 내 안에 의지를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형상에 불과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속아 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사랑.우정.애정. 연민이라고 우리가 연연하는 것들은 형체가 없다. 다만 마음 울타리에 은근한 온기로 자리잡고있어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의지가 될 뿐이다.

여러날 째 꿈이 꾸어진다.
며칠전에는 낮 모를 여인이 한마디 말없이 서러운 얼굴 표정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간밤 꿈에는 함초롬한 쪽두리 꽃이 연분홍 수술을 서너개 찰랑 거리며 수줍게 내앞에 나타났다.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보인것은 쪽두리 꽃이였다.
신선하고 신비로웠다. 동화처럼. 내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 쪽두리 꽃으로 보여진것이다. 먹구름 처럼 어둡기만하던 날들이 환해졌다. 내가 절실하게 부르고 싶은 그대는 꽃이 되어 환하게 내게로 왔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멈추지 않고 혹독하게 흐르는 지금에 꽃이 되어 내게로 온 쪽두리 꽃을 나는 서슴없이 그대라 부른다.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에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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