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봄 소풍 가는 날이다.
할머니는 다꽝을 집에서 만드셨다.
나나스께도 일년 내내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른다.
죽을 먹을때는 간장과 나나스께만 밥상에 올려 주시기 때문에 나나스께나 다꽝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울렁거린다.
죽은 열이나고 아프거나 배가 아플 때 주신다.
지금처럼 선명한 노란색이 아닌 희끄므레한 노란색 다꽝은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도 할머니는 다꽝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 품을 떠나게 되었던 큰 사건은 장티프스라는 옘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아이들이 장티프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장티프스에 걸리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벙어리가 된다고 했다.
애들이 죽어나가니까 어른들은 장티프스를 옘병이라고 불렀다.
그때도 아프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는 다꽝과 나나스께와 죽만 먹었었다.
그 후로 오랬동안 다꽝을 먹지 않았었고 나나스께는 딱 한번 중학교 때 나의 가정 선생님이 주신 적이 있었다.
물론 절대 먹지않았었다.
소풍날은 김밥을 먹는 날이라고 나는 기억한다.
이른 새벽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김밥을 싸신다.
그 시절에는 김밥 싸는 대나무 발이 흔치 않았었는데 나의 할아버지는 비닐우산에 있는 대나무 우산살로 김밥을 싸는 발을 만드셨다.
할아버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마법의 작은 칼로 비닐 우산에 있는 대나무를 분리한다.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줄 이라는 쇠로 된 야스리로 부드럽게 갈아서 명주실로 엮는다.
나는 그 순서를 다기억한다.
이른 아침.
할머니는 나나스께를 평소처럼 반쪽 달 모양으로 썰지 않으신다.
김과 비슷한 길이로 자르시고 다꽝도 같은 길이로 자르신다.
집 뒤란에 있는 할아버지의 작은 밭에서 숭덩숭덩 잘라온 시금치는 적당한 간으로 무치신다.
이때 사용하는 참기름은 지난해 가을 영양에 있는 할아버지의 벗님이 보내주신 참깨로 짠 참기름이다.
할아버지는 나와 할머니를 데리고 산에 가는것을 좋아하신다.
새순으로 올라오는 햇님 나물순도 꺾어서 할머니 앞치마에 담고 고사리 순도 따신다. 아 돌나물도.
여름에 강으로 빨래 하러 갈 때는 강가에 빨래를 널어놓고 야트막한 산에 간다.
희고 얇은 초롱꽃. 할아버지가 말해주셨다.
초롱꽃은 깊은 밤에 선녀들이 등으로 들고 다니는 초롱이라 함부로 꺽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초롱꽃이 있는 근처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울이 있기도 하고 물이 고여 있는 옹달샘이 있기도 했다.
초롱꽃은 물을 참 좋아하나보다.
그날 할아버지는 이야기 해주셨다.
옹달샘을 만나면 절대로 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매우 엄하게 말씀하셨다.
산에 고여있는 작은 옹달샘에는 뱀이 알을 낳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그 물을 먹으면 큰일 난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그 지엄한 당부 때문에 산에가서 옹달샘을 보면 뱀이 여기에 알을 낳는단 말이지?라고 되새겨본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산속에 옹달샘은 기생충이나 다른 감염 때문에 식수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흐르는 물이 아닌 고여있는 물의 위험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여름.
경복궁을 짓는데 기둥으로 사용했다는 황강목 군락지를 보러 갔을 때 한 여름이라 매우 더웠고 눈과 얼굴에 달라붙는 날파리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편했었다.
황강목 군락지는 산 정산 가까이 있었고 우리들은 중간쯤 올라가다 무성한 이끼들이 군락을 이르고 있는 작은 옹달샘을 발견했다.
앞서 가던 이들이 물을 발견하고 매우 반기며 얼굴이나 눈이 라도 좀 씻고 목을 축이자고 제안했는데 나는 손사래 치며 절대 이 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옹달샘에는 뱀이 알을 낳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물을 마시면 뱀 알이 뱃속에 들어간다고 말하자 일행들은 배를잡고 웃었다.
나는 그날 모두에게 놀림감이 되었고 나만 그물을 마시지 않았다.
정성스럽게 싸주신 김밥이라는 한마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너무나 그립고 돌아보고 싶은 그날 새벽에 싸주신 김밥.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드실 점심까지 준비되어서 소풍은 진정 소풍이 되었던 날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철도 역장이라는직함은 마을의 유지로 여겨지기 때문에 크고 작은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하신다.
서로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살피시는 것이다.
이토록이나 정성스럽게 나를 길러주시는 두 분의 사랑을 때때로 나는 배신했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찾아드는 감기처럼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동생들과 소란스레 놀고 싶기도 했다.
방학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방학에 엄마 집에 가련? 하고물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왜 금방 울음이 나던지.
으흠. 장사하는 집에 가서 돈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안 된다. 딱 이틀만 엄마 보고 오너라.
할아버지 하고 같이 엄마 보러 간다.
할아버지는 엄마 집에 가시면 아줌마들이 사용하시는 맷돌을 손 봐주신다.
작은 징으로 맷돌에 흠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렇게 하면 두부를 만드는 콩을 갈 때나 빈대떡을 만들 때 사용하는 녹두를 갈 때 부드럽게 갈아진다고 했다.
낡은 기둥이나 수리할 것을 찾아 이틀 동안 엄마의 삶를 보살펴주신다.
나는 그 이틀 동안의 즐거움을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밤이 되자 남동생들이 속삭인다.
누나는 누가 오는지 망을 봐야 한다. 누가 가계에 들어오면 쥐처럼 찍찍하고 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첫째 남동생이 명령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망을 본다.
엄마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는 시간이다.
남동생들은 이미 만들어 둔 길다란 철사 끝에 검정 고무줄을 칭칭 감고 그 위에 풀 비슷한 것을 칠해서 돈 통 입구에 철사를 집어넣는다.
신발 가계 돈통은 아버지가 목수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이다. 종이돈이 들어가는 입구는 옆으로 일자 형 구멍이 있다.
동생들은 이 구멍으로 철사를 넣어서 종이돈을 꺼냈던 것이다.
나는 남동생들이 뭘 하는지도 봐야 하고 누가 가계 문 가까이 오는지도 봐야 하기 때문에 숨을 죽이며 이 찰나를 관찰해야 했다.
단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눈이 부리부리한 첫 째 남동생이 나에게 눈짓 했다.
아. 나가자를 명령하는구나!
신발을 진열하는 다이 뒤에 쪼그리고 앉아 망을 보다가 잡자기 일어서서 나가려다 그만 다이 모퉁이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이는 신발을 진열하는 나무로 만든 평상 같은 것이다.
흐흡.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아픈것을 참았다.
남동생들을 따라 신발 가계 뒤 어두운 좁은 골목에 셋이 모였다.
역시 대장은 다르다.
백원이야.
철사줄에 붙어있는 돈은 나는 처음 보는 푸른 종이돈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대장은 골목을 나가서 장난감도 팔고 풍선껌도 파는 가계에 도착했다.
입안에 가득 단 맛이 고이는 풍선껌은 수박향인가 오렌지 향인가, 침을 삼키기도 전에 정신이 아득했다.
대장 동생은 장난감 기관총을 둘째 남동생은 플라스틱 긴 칼을 들었다.
돌격!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둘째 남동생은 대장을 따라 골목을 달려갔다.
그날 밤 아랫목에는 이불이 깔려있고 방바닥은 할아버지 집과 다르게 매우 따듯하다는 것을 느꼈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대장 동생과 졸병 돌생은 신발 가마니가 쌓여있는 창고에서 보로 박스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딱지를 가져왔다.
이불속에서 소곤거렸다.
지난 번 산 아래 사는 애들하고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무기를 더 사고 이번엔 우리 시장 부대가 이겨야 한다. 알았지?
나는 동생들이 하는 전쟁 놀이의 작전을 들으며 그들의 손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딱지를 구경했다.
딱지를 접을 때 더 힘이 센 딱지로 거듭나기 위해 굵은 양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둘째 남동생이 덩치도 크고 힘이 더 세 보이는데 첫 째 남동생은 대장으로서 자세를 갖추고 있다.
둘째 남동생은 대장 형에게 절대 복종하고 있다.
대장 남동생은 딱지를 접으며 나에게 명령했다.
오늘 풍선 사준거 너네 집에 가서 할아버지 한데 말하면 죽음이야 알았어?
응. 말 안 할께.
나는 할아버지께 동생들이 돈 통에서 철사줄로 종이돈 백 원을 꺼내서 나에게 풍선껌을 사주고 바람개비도 사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날개가 각각 색이 다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바람개비는 손에 들고 뛰면 정말 이쁘게 잘 돌아갔다.
입으로 바람을 불면 잘 돌아가지 않지만 왼손에 들고 달리면 들릴 듯 안 들릴듯 고운 소리까지 난다.
동생들은 내가 누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대장 남동생은 기분에 거슬려면 나에게 이를 앙다물며 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너네 집에 가.
이틀은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그사이 쌓인 우리들끼리의 추억도 많아졌고 나의 서러움이 짙어지기도 했던 여름이었다.
다음 해 여름 엄마와 남동생 둘은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에 왔다.
나는 아침부터 신이 나서 할아버지 사무실에서 엄마와 동생들을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린 엄마는 양산을 펼쳐 쓰고 할아버지를 따라 앞에 걸어갔다.
두 남동생들은 푸른색 윗도리에 흰 카라가 달린 교복을 입고 왔다.
철길 옆에 깔려있는 자갈을 밟으며 걷다가 대장 동생은 언덕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둘째 동생도 따라 뛰기 시작했는데 앞서 가던 남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남동생이 뛰어 내려가던 언덕 아래에는 시멘트로 된 큰 하수구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대장이 큰 하수구가 있는지 모르고 달려 내려가다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할아버지 사무실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갔다.
할아버지와 엄마가 오시고 역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도 오셨다.
하수구 아래 떨어진 남동생은 깨진 병 조각에 이마가 찢어져 무려 일곱 바늘이나 꿰매고 하마터면 눈까지 다칠 뻔했던 엄청난 사고가 있었다.
수술을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눈이 퉁퉁 부어서 나를 바라볼 때면 얼굴을 한껏 들어야 바라보면서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왜 뛰어내려 갔어? 언덕인데.
누나 보고 싶었는데 보니까 좋아서.
이힝!
그 대장 남동생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파란만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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