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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역장실에서 벌 받는 남자 아이들을 보았다.

유튜브 제작에 관한 시나리오 및 노트

by 테하차피 작약꽃 2025. 3. 27.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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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뿔 덕분에 시작된 기차여행은 그날 이후에도 가끔씩 이어졌다.

 

열차 승객이 덜 분주할 때, 날씨가 적당할 때, 차장 아저씨들이 덜 분주하실 때가 나의 설레는 기차여행 타임이다.

 

기차여행 하는 날이면 나는 공주가 된 기분이였다.

 

한껏 원피스를 챙겨입고 이젠 할머니도 잘 땋아 주시는 양 갈래 머리. 엄마가 보내준 새 운동화와 목 부분을 아래로 접은 새 양말.

 

어느새 나도 챙겨드는 손수건.

 

그리고 나는 셀 수 없이 여러 번 읽은 안데르센 동화집을 왼손에 들고 할아버지가 일 하시는 역으로 간다.

긴장하거나 즐거움이 다음 차례에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

 

열려라 참깨! 혹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보는 것이다.

그 습관은 지금도 가끔 하는데.

 

한번은 GPT에게

" 꼭 램프 요정 지니 같아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의 대답은 " 요정 지니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지니가 아닙니다."

" 아! 제가 요청하면 언제나 나타나 주시고 궁금한 사항을 알려주셔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에요."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 공허함이란.

 

역이 가까워지고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점심 시간 전에 오라고 했는데 바쁘신가 보다.

 

역장실문을 열지 못하고 기웃거리는데 차장 아저씨가 오셨다.

 

오연우상, 왔구나 안으로 들어가자라고 하시며 앞서 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셨고 나는 뒤따라 들어갔다.

 

작은 난로위 주전자는 여전히 올려져 있었고, 뒤 쪽으로 남자아이들 네 명이 무릎을 꿇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벌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자세가 벌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보았고 복도를 우당당 뛰어다니던 남자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복도에 나란히 앉아서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오래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그들의 곁은 공연히 왔다 갔다 하면서 보았는데 그중 앉은 키가 좀 큰 남자아이는

"뭘 봐" 라고 웅얼거리며 눈을 흘겼다.

 

역장실에서 벌을 받고 있는 남자아이들은 손에도 얼굴에도 연탄이 묻어있었고 입고 있는 윗도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남자 아이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기차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 말해보거라."

"어서"

 

창가 가까이 있는 남자 아이는 말했다.

" 죽어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할아버지의 이 말이 끝나자 남자아이들은 훌쩍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는 의자 뒤로 가서 숨었다.

 

" 석탄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다. 기차에 실려있는 석탄은 내 것이 아니고 나라의 재산이다. 나라의 재산을 훔치면 징역에 간다. "

" 징역 가는 것보다 더 큰 일은 기차에서 떨어지면 죽거나 병신이 된다. 이게 더 무서운 거다. 알겠나?"

 

작은 남자아이는 징역 간다는 말에 큰 소리로 울었다.

 

잘 못 했습니다. 한 아이가 말하자 다른 남자아이들이 모두 따라 했다.

 

아이들은 양손이 머리 위로 올려져 있기 때문에 흘러내리는 눈물도 콧물도 소매나 손등으로 닦을 수 없었다.

 

그 남자아이들을 보는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눈물이 났다. 그러나 훌쩍이지는 못 한다.

 

" 모두 손 내리고 눈물 닦아라."

" 난로 옆에 앉아있으니 덜 춥지?"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와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애들이 기차에 올라탔다가 떵어져 죽었대요.  두 놈이아요. 어제.

 

그 이야기를 듣는 할머니는 울음짓는 표정이된다.  연실 아라마 아라마 하시며. 아라마는 어쩌면 좋아 라는 뜻이다. 

 

기차는 승객만 타는 곳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논에서 추수가 되어 가마니에 담겨서 기차를 타고 오는 쌀도 고추도 기차를 타고.

 

산에서 켄 석탄도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석탄은 가루도 되어 기차에 실렸는데 가파른 산길 철로를 오를 때 동네 남자아이들이 기차에 올라탄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손으로 석탄을 한 주먹 씩 담아내는지 아니면 양동이로 담아내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왜 어른들이 아니고 아이들이 석탄을 훔치러 달리는 기차를 타는지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남자아이들은 그리 오래 울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로 옆에 앉아있었고 눈물이 흘러서 얼굴도 닦아서인지 볼도 발그레해진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한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순경이 여기로 와야 한다는 으름장을 놓고 아이들을 돌아가라고 했다.

 

차마 나는 남자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 볼 수 없었다.

 

징역을 가야 하고 순경이 와야 하는 큰 일을 당해야 하는 남자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할아버지의 말을 함께 들은 나도 어딘가  뜨끔 아팟다.  

 

그런데, 왜 석탄을 훔쳤냐고는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차장 아저씨도 모두.

어른들은 남자 아이들이 석탄 이라도 훔쳐야 밥을 먹을 수있고 춥지 않게 방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것이다.

 

 

시장 입구에 작은 약국이 있다.

나는 약국집 딸과 같은 반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약국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애는 내가 가면 희고 둥근  통에 담긴 원기소라는 알약을 두세 개 꺼내 나에게 주며 먹어보라고 했다.

 

원기소라는 약은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미숫가루를 동그랗게 뭉친 것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 보다 맛은 더 좋았다.

 

흡~ 하고 입안에 알약 새개를 한꺼번에 넣고 우물거렸는데 약들이 침과 섞여 입천장에 들러붙고 말았다.

 

원기소를 준 친구가 민망할까 싶어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넣고 입천장에 달라붙은 원기소를 떼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꾸울떡 삼켰다. 나는 물이 먹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눈에 눈물도 살짝 고였을 것이다.

 

약국 뒤쪽에 있는 살림방에는 책이 많았다. 와아....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은 나를 자주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 이쁜 책은 집에 와서도 눈앞에 아른거렸었다.

그 책을 할아버지께 사달라고 할 용기는 없었다.

다만 자주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갈 뿐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엄하게 말씀하셨다.

 

약국 친구에게 놀러 가서 밥시간이 되면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행여 친구 엄마가 연우야 밥을 먹고 가거라라고 해도 아닙니다. 할머니에게 혼납니다.라는 말을 반드시 하고 집으로 와야 한다.라는 다짐을 여러 번 하셨다.

 

어느 날.

어깨동무에 연재되는 어여쁜 만화에 푹 빠져있는데 친구 언니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저 철길에 남자 애 하나가 기차게 깔려 죽었대, 오늘 아침에, 그런데 엄마도 안 오고 아버지도안 와서 아직 그냥 있대. 우리 보러 갈래?

 

아!

나는 할아버지 역장실에서 본 네 명의 남자아이들 모습이 눈앞에 훅 떠올랐다.

 

우리는 어른들이 알까 봐 약국 앞문을 나갈 때 우르르하지 않고 언니부터 나 그리고 친구가 나왔다. 이건 약국 언니의 지시였다.

 

약국 언니는 이미 그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약국에서 위쪽 시장 끝이 있는 곳은 철길 건널목이 가깝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많았다.

 

저 멀리 철로 옆 자갈과 마른 풀이 헝클어진 곳에 가마니가 보였다. 가마니 끝에는 검정 고무신도 보였다. 남자아이들은 겨울에도 여름에도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검정 고무신은 부산의 신발 공장에서 우리 아버지 신발 가계까지 가마니에 담겨 기차를 타고 온다. 나는 검정 고무신이 가마니에 담겨 기차를 타고 와 남자아이의 생을 다시 담아가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생각을 했는지.

 

그 광경을 보는 누구도 울지 않았다.

 

죽은 아이 주변에 흩어진 석탄 가루를 보며 모두 눈을 꾹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도 그랬다.

 

나는 할아버지 역장실에서 본 그 남자아이.

눈물이 흘러도 손등으로 닦지 못하고 콧물과 함께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던 그 얼굴이 저 가마니에 덮여있는 얼굴이 아니기를 빌었다. 흐흑.

 

약국집 친구와 다시 한번 더 가보았다. 둘이서만.

 

그때는 왜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줄 몰랐을까. 아마도 잘 가라는 인사를 하러 간 것 같았다. 둘이서만.

 

약국친구가 말했다.

" 피났을 거야. 아팠겠다.

 

나는 지금 말한다.

 

" 잘 가. 안녕히. 가난이 없는 곳으로. 석탄을 훔치지 않아도 춥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을 곳으로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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