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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할미 어디가?

유튜브 제작에 관한 시나리오 및 노트

by 테하차피 작약꽃 2025. 3. 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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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코 고무신을 말끔하게 닦아 댓돌 위에 올려놓는 날은 할머니가 나들이 가신다는 표현이다.

할머니는 머리를 감을때 머리에 꽃은 은색으로 된 은비녀를 빼고 긴 머리를 마루 끝에 앉아서 빗질을 하신다.

 

할머니가 사용 하시는 빗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붉은 색이 나는 나무로 된 빗.

양쪽으로 톱날 같은 빗 살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다른 하나는 둥근 손잡이가 달려있는 약간 검은색이 나는 침빗이다.

 

왜 참빗이라 부르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할머니는 꼭 참빗으로 먼저 빗으신다.

 

할머니 머리카락이 길다는 것은 머리 빗질을 하 실 때마다 나는 물어본다.

 

할미 머리가 길어,

 

할머니는 말 하신다.

 

머리가 길어야 비녀가 붙어있지.

 

머리를 감으시고 햇살이 발 비취는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며 양쪽으로 빗살이 있는 침 빗으로 천천히 골똘하게 생각을 하시며 빗질을 하신다.

 

그때는 정갈하다는 말을 알지 못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나의 할머니는 정갈하시다.

 

늘 입으시는 회색 치마는 오늘 안 입는다.

 

밤색 치마에는 참 이쁜 무늬가 있다. 밤색 치마 위에는 할머니가 털실로 짠 긴 조끼를 입으신다. 털실로 짠 조끼 주머니에는 깨끗한 손수건이 들어있고 종이돈도 조금 있다.

 

할아버지의 논에서 농사를 지은 분이 보내주신 흰 쌀은 밥이 맛있다. 해마다 가을인지 여름 끝자락인지 즈음에 기차를 타고 쌀가마니가 도착한다. 할아버지 논에서 농사를 짓는 분은 가을에 말린 고추와 무 말랭이, 참깨들을 보내주신다. 할아버지 집으로 기차를 타고 오는 쌀 가마니들은 엄마 집으로도 간다고 했다.

 

오늘은 할머니가 절 집에 가시는 날이다.

말끔하게 빨아서 말린 자루에 쌀을 담으신다. 절반 정도 쌀이 담긴 푸대는 마루 한쪽에 놓이고 할머니는 나를 불러 단장을 해 주신다.

 

물론 나도 머리를 감아야 하고 말려야 한다.

 

절 집으로 가는 길은 살길이 꼬불꼬불하고 자잘도 많다. 할머니는 휴우...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이고 있는 쌀자루를 내려놓고 산길 옆 큰 돌에 앉아서 땅도 닦으시고 치마 자락을 허리에 감아올려 다시 한번 추슬러 산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신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가며 흰 고무신이 밟고 지나간 자리만 따라 밟는다. 그래야 재미있다.

 

절집에 도착하면 어느 새 저녁이 되고 할머니와 나는 마루 끝에 있는 작은 방에서 잠을 잔다.

 

달콤하고 깊게 잠에 들어 달달한데 할머니는 일어나신다.

 

일어나라

 

단 한마디에 나는 그야말로 벌떡 일어나게 된다. 방안을 아니 세상을 가득 메운 큰 종소리가들렸기 때문이다.

 

아직 겨울도 아닌데 발이 시려웠다. 할머니를 따라 큰 방에 들어갔다. 법당이라고 했다.

 

큰 스님은 이미 목탁을 치면서 내가 이미 수없이 들었었던 나무아미타불 혹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같은 염불을 외우고 다른 몇몇 우리 할머니 같은 분들은 절도하고 손에 든 염주를 굴리며 스님을 따라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연기 냄새는 코끝을 상쾌하게 하기도 했고 춥기도 했다.

 

할머니는 나의 옷 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기시며 방석 위에 앉으라고 눈짓으로 끔쩍 꿈쩍 하셨다.

 

방석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온통 금색 옷을 입은 부처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앗!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어른들은 끝없이 불경을 외우거나 절을 멈추지 않고 하셨고 나의 할머니도 아픈 무릎으로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시며 절을 하셨다.

 

나는 졸렸다.

 

졸면서 할머니가 웅얼웅얼 거리시는 중에 딱 한 마디가 귀에 쏙 들어왔다. 할아비와 오연우가 부디 그저 아무 탈없이..... 그 말만 반복하셨다.

 

눈물이 찔끔 날려고 했다. 저 부처님께 할아비와 나 오연우가 밥 잘 먹고 잘 자고 탈없이 살도록 당부드린다는 소원을 빌고 계셨다.

 

절 집에서 밥을 먹을때는 커다란 마루에 여럿이 모여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을 때 할머니는 매우 엄격하셨다.

 

동네에는 마당이 큰 집에서 큰 굿이 잔치처럼 열리는 날이 있다.

 

까만 모자에 닭털 깃을 꼽은 아저씨는 여자들처럼 긴치마에 알록달록한 저고리를 입었다. 발이 묶인 가여운 닭은 아저씨가 왔다 갔다 하시는 근처에서 눈을 절반쯤 감은 채 울지도 않고 있다. 앞에는 쌀도 뿌려져 있었는데 닭은 쌀도 먹지 않았다.

 

가끔 장터에서 만나는 아저씨는 박수무당이라 불렀다.

 

둥둥둥 마당이 큰 집에는 빈 틈이 없도록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당을 내려다 보는 감나무 위에도 애들이 올라가서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 곁에서 몸을 아주 조그맣게 움츠리고 닭이 불쌍해서 닭의 눈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눈빗으로 닭을 보지 말라고 눈을 꿈뻑이셨다.

 

박수무당아저씨가 사방을 흔들어대는 장구와 꽹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난 뒤에 장터에서 가금 만났던 아주머니가 등장했다.

 

장터에서 할머니와 인사를 할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애기처럼 말했다.

 

엄마 엄마 나 여기 왔어요. 매우 슬픈 목소리의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말하자 사람들이 울었다.

 

나의 할머니도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말 했다.

 

여름에 강물에 빠져 죽은 이 집 아들이 왔대....지금 여기에. 할머니는 나에게 속닥이며 말씀해주셨다.

 

아! 나는 기억한다. 올 여름에 비가 몇 날 며칠 멈추지 않고 내린 날에 남자아이들이 냇물을 건너다 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냇물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거센 빗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고 남자 아이들이 냇물에 갔다가 물살에 떠내려 갔다. 그 집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과 아이들을 찾다가 고무신 한 짝만 찾았다고 했다.

 

오늘은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마당이 큰 이 집 아들이 죽은지 49일이 되는 날이라 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굿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다 함께 목놓아 이름을 부르며 울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울었다.

감나무 위에서 굿판을 보던 아이들도 죽은 아이들의 친구였던 것이다. 감나무위에서 남자아이들도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때 박수무당 아저씨가 손에 들고 휘두르던 긴 칼에서 피를 묻혀서 마당을 돌며 휘이휘이 저었다.

박수무당 아저씨도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이제 떠나가라고 했다.

나도 슬펐다.

 

물에 빠진 애들의 영혼이 근처 어디에 있는지 고개를 살짝 돌려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환갑잔치를 하거나 누군가의 생일 , 큰 굿을 할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가신다.

 

내가 안 따라 간다고 할까 봐 어디를 가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신다.

 

환갑잔치는 맛난 음식이 많이 있는 잔치다.

 

할머니가 잔치집에 들어가시면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얼른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신다.

 

철도 역장은 작은 동네에서 어쩌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는 큰 잔치든 굿집이든 꼭 참석하시는 것 같다.

 

환갑집에서는 주인 아주머니가 맛난 음식을 우리 할머니 앞에 연실 놓아주신다.

 

나는 다른 음식은 맛나지 않지만 희고 두꺼운 사발에 담아주시는 감주는 맛있다. 홀짝 마시고 사발 아래에 가라앉은 불은 밥풀을 숟가락으로 건져 먹으면 할머니는 내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너 이 감주 않이 먹으면 여기 이 밥풀 보이지? 이 밥풀처럼 배가 팅팅 불어 터진다..

 

아 밥풀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쌀알 모양은 흔적도 없고 속이 훤하게 보이도록 팅팅 불어 터져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감주와 식혜를 구별하여 보았다.

 

식혜도 감주도 같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한 사발 이상은 먹지 않았다.

 

내 배가 밥풀처럼 팅팅 불어 터질까 봐.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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