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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비 내리는 날 꿀벌을 양귀비 꽃 속에 숨어있다.

유튜브 제작에 관한 시나리오 및 노트

by 테하차피 작약꽃 2025. 2. 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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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겨울은 시간이 느리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반복해서 읽어도 우리는 심심하다.

이불속에서 또 뭐 재미난 것 하고 놀까?라고 할아버지에게 묻자 할아버지는 육백 기 치자...라고 하시며 낡은 작은 책상 서랍에서 화투를 꺼내신다.

할아버지 책상 서랍은 보물단지다.

주판이 들어있고 할아버지 돋보기도 들어있다. 또한 누구 생일 주소 등을 적어 두시는 치부책이 들어있다.

두 분은 화투쟁이다. 육백 기는 화투놀이 이름이다.

할머니가 다림질 하실 때 바닥에 깔고 사용하는 담요는 군데군데 아주 예쁜 노란색으로 바래져 있다.

할머니가 네모 반듯하게 접어서 바닥에 깔고 할아버지는 알록달록한 화투를 쭈르륵 깔고 두 손으로 휘이 휘저으신다.

화투는 한 장 한장 모두 껍질 색갈이 바래졌다.

귀퉁이도 닳아서 네모의 모습을 잃었다.

두 분은 화투놀이를 좋아하신다.

할아버지는 화투를 섞으실 때 흥얼흥얼 노래를 꼭 부르신다. 그러면 나와 할머니는 흥얼 거림에 따라 부른다.

아는 노래다. 할아버지 책상 옆에 있는 전축에서 자주 듣는 노래다.

전축에 전축판을 걸어서 듣는 노래의 순서는 언제나 거의 같다.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님은 다시 못 오시는고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어느새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른다.

산유화가 두 번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불러지고 또 연속 재생으로 이어지는 노래는.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이다.

할아버지가 산유화를 좋아하시는 까닭을 알게 된 것은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아들과 나의 엄마를 낳아주신 할머니.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만나 장가를 들었던 첫 아내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때문이라는 것을 나의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였다.

이불속에서 따라 부르던 산유화는 의미도 모르고 그저 꽃이 피네 꽃이 피네를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 화투는 순서에 따라 할머니 손에 몇 장 할아버지 손에 몇 장 그리고 담요 위에 또 몇 장이 언제나 같은 숫자로 펼쳐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한 장이 나올 때를 기다린다.

그것은 파랑새다.

바닥에 파랑새가 쪼르륵 앉을 때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파랑새 그림이 그려진 한 장을 가져온다.

그 파랑새가 놓은 점수를 가진 한 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그림이 그려진 한 장을 가져오면 모르는 체하시다가 파랑새만 슬쩍 가져오면 할아버지는 노래처럼 말씀하신다.

어허~ 새가 날아가는구나 새가 날아갔어

새가 어디로 날아갔누

나는 모른 체하며 이불속으로 쏙 들어간다.

겨울이 가고 이른 봄이 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놀고 두 분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속에 화초처럼 자랐다.

봄이 오고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에 가기 위해 다양한 준비물이 필요했다.

가슴에 명찰과 함께 달아야 한다는 흰 손수건과 토끼 그림이 그려진 빨간색 메는 가방과 이름을 쓸 수 있는 운동화, 그리고. 내 이름이 쓰여진 작은 신발주머니.

양철로 만들어진 필통에는 연필 세 자루와 종이 껍질을 풀어서 써야 하는 색연필 한 자루, 그리고 말랑말랑 한 지우개. 양철로 된 필통 뚜껑에는 작은 흰 토끼 두 마리가 마주 보며 방아를 찧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할아버지는 일이 끝나시고 문방구에 들러서 이 모든 준비물을 사가지고 오셨다.

할머니와 나는 입학식에는 어떻게 해아 하는지 실제처럼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차렷도 해보고 열중 쉬엇도 연습했다. 할아버지는 열중 쉬었을 했을 때 눈도 깜빡거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다 자라나서도 열중 쉬었을 하게 되었을 때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여신 요시를 연신 하셨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은 엄마도 왔다. 엄마는 양단 두루마기를 한복 위에 입고 목에는 족제비 털로 만들었다는 털 목도리도 하고 흰 장갑도 끼고 왔다. 엄마는 미장원에서 고대도 했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엄마를 반기면서도 퉁명스레 말하셨다.

자네는 국민학교를 두 번 입학하는가?라고 물으셨다.

새 운동화를 신었으나 발은 시렸고 교장 선생님은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길게 하셨는지 너무 추워서 나는 그저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콧물이 나왔지만 새 손수건에 콧 물을 닦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입학식이 끝나면서 다음 날부터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등교 시간을 맞춰야 했다.

할아버지는 일 하러 가시기 전에 나를 업어서 학교 정문 앞에 내려주셨다. 작은 것이 언덕을 넘어 학교 정문 앞까지 걸어가는 것이 아까워서라고 하셨다.

학교가 끝나면 교실에서 유리창 너머로 할머니가 회색 한복 치마를 입으시고 가만 서서 내 교실 창문을 바라보시는 모습을 나는 확인 하고서야 교실에서 나갔다.

학교에 오는 길은 할아버지가 업어서 데려다주셨고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가 데리려 오셨다.

키가 작았던 나는 반 아이들 사이에 걸어가면 할머니는 내가 잘 보이지 않으셨는지 학교 정문 앞에서 조금 옆에 있는 느티나무 쪽으로 가서 바라보시곤 하셨다.

할머니 손에는 언제나 손수건이 들어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을 때 가끔은 손수건을 잡기도 했는데 그때 할머니는 흠칫 놀라셨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떠오르면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 아프게 해 드렸던 것 같아서 죄송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밉다.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소나기가 내렸다.

운동장에 비가 내려서 먼지도 일어나 춤을 추었고 비가 내리는 하늘 끝도 운동장도 흐려졌다.

저 학년이라 점심시간 전에 수업은 끝난다. 비 내리는 날은 동급생 엄마들이나 그들의 할머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앞 정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하 나 둘 아이들을 마중온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고 없다. 나는 교실 안에서 학교 정문 앞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오셨는지를 확인한다.

아직 할머니는 안 오셨다.

소나기는 멈추지 않고 내리고 텅 빈 교실 안은 춥다.

나는 용기를 내서 교실밖으로 나갔고 계단을 내려가 걸어갔다.

물론 비를 맞으며.

그때 할머니는 한복 치마를 걷어 올려서 한 손으로 움켜잡고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었다. 허둥지둥 걸어오셨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애타게 기다렸던 할머니가 보이자 나는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운동장 옆 뒤쪽에 있는 교장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관사 앞 꽃밭으로 달려갔다.

얼른 달려가서 할머니 품에 안겼을 것을. 또 내가 밉다. 왜 꽃 밭으로 달려간 거야?

소나기가 내리는 꽃밭에는 아직도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벌들이 웅웅 거리기도 했고 비에 젖은 거미들이 떨어질세라 거미줄에 대롱 거리며 내달려 있다. 비에 젖은 봉숭아 꽃은 이미 땅에 떨어져 분홍과 흰색에 흙물이 올라앉아있다.

향기로운 꽃냄새는 비에 젖으면 더 진한 냄새가 난다. 마중을 늦게 오신 할머니를 놀래주려고 숨었던 꽃밭에는 새로운 향기와 벌레들이 우산도 없이 꽃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마치 나처럼.

그러다 꽃잎이 붉고 꽃 안에 작은 꽃 수술이 짙은 노란색으로 피어난 정말 예쁜 꽃을 보았다.

어머나 이쁘다. 비가 오면 빗물이 꽃 속에 고여있는지 어디로 흐르는지 보려고 한 송이를 내 앞 쪽으로 잡아당겨보았다.

만약 꽃 속에 빗물이 고여 있다면 옆으로 기울여 물을 흘려보내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였다.

눈앞이 번쩍 하면서 누군가에게 이마를 한 대 맞았다. 머리에서 텡하는 종소리가 난 것도 같다.

털썩 주저 앉아서 내 생애 최대로 큰 목소리로 울었다. 엎드렸는지 뒤로 넘어졌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참 울다가 그제야 할머니가 학교 앞 정문에 계시다는 것이 생각났다.

큰 일났다.

눈이 안 보인다.

빗소리도 들리고 여기가 꽃밭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흐미하게 느껴지는 밝은 쪽으로 한발 한 발 걸어가는 데.

아까짱 아까장 여기에 있구나라고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더듬더듬 잘 걷다가 놀란 할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둘이 소나기 내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할미도 울고 나도 울고.

나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가끔 할아버지는 할머니 무릎에 말린 쑥을 동글동글하게 말아서 붙이고 그 쑥에 은색으로 된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인다.

할아버지 라이터는 분해가 되는데 심지를 갈기도 하고 라이터 아래쪽을 열어서 기름을 채워 넣기도 한다.

언제나 할아버지의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라이터는 할머니에게 쑥뜸을 해 주실 때 사용하신다.

할머니는 나를 업고 나는 우산을 들고 우리는 그렇게 작은 산 언덕을 넘어 집으로 왔다.

나는 벌에 쏘인 것이다. 고소하다. 그 벌이 아주 무서운 땡벌 이었으면!

꽃을 들여다보다가 벌이 요놈! 하고 눈꺼풀을 쏘고 나는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려고 벌은 봉숭아보다는 큰 양귀비 꽃 속에 숨었는데 하필이면 벌이 숨어있었던 양귀비 꽃을 들여다보며 꽃송이를 건드린 것이다.

밤에 되자 얼굴이 부어서 호박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오셔서 나를 보시고 양귀비 꽃에 숨었던 벌을 건드려서 떡호박이 되었다네요..라고 놀리셨다.

작은 얼굴이 부었으니 입도 붓고 코도 부어서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코를 엄지 손가락과 장지 손가락으로 잡고 앞으로 잡아당겨야 숨이 잘 쉬어진다고 내 코끝이 빨개지도록 잡아당기셨다.

덕분에 다음 날은 학교를 안 갔다.

짙은 빨강 꽃이 양귀비 꽃이었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두고두고 이야기해 주셔서 알았다.

 

할머니는 말썽쟁이 나를 업고 산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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